볼 생각 없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재밌다, 천만 간다, 검은사제와 사바하의 감독이다 해도...
슬슬 극장에서 내려갈 시기도 됐고 어차피 OTT로 나올테니 말이죠.
그런데,
‘건국전쟁’ 감독, ‘파묘’ 흥행에 “좌파들 몰려 분풀이”
네??
건국전쟁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승만을 칭송했으니 애국 보수의 영화고,
파묘는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일제 시대를 비판했으니 좌파 빨갱이의 영화라 이거야?
제가 평소에 이 망할 놈의 나라 타령을 하면서도 독립운동쪽으로 긁히면 욱하는 게 있어서요,
그따위로 말한다면 봐주마-하고 다녀왔습니다.
어떤 리뷰어도 말씀하셨지만 파묘가 천만을 찍은 건 굳이 안해도 될 말을 한 애국보수 영화 감독의 한 마디가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재밌었습니다.
보길 잘했어요.
대부분 지적하는 게 후반부 크리쳐물로의 변화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막상 보니까 너무나 압도적인 물리력을 상대하는 상황이다보니 딱히 긴장감이 떨어지진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군대 데려와서 밀면 되잖아- 라고 하지만 피해자가 눈에 띄게 증가해서 야생동물 짓이 아님이 밝혀지지 않는 한 국가의 무력 집단이 오컬트로 움직일 리가 없죠.
1~3장 초반부는 누가 뭐래도 잘 만들었지만 파묘라는 특성만 빼면 오히려 전형적이라고 생각됐고,
4~6장 후반부는 이게 뭐야 싶지만 오히려 독특했었기 때문에 좋았던 듯 합니다.
또한 한 영화를 1장~6장으로 나눠서 진행시키는 게 처음엔 살짝 거슬렸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아 분위기가 살짝 바뀌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게 만들어서 살짝 늘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느꼈어요.
대살굿 장면은 다들 칭찬하길래 제가 과하게 기대한 감이 있었지 싶습니다.
어... 음 우리나라 굿이네.
하고 봤습니다.
배우의 연기나 연출을 지적하는 게 아니고 제 안에서는 뭔가 대살굿만의 독특하고 대단한 걸 기대했었나봐요.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빠르게 파묘가 진행되는 상황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굿판이라 대살굿 장면을 따로 떼어서 감상할 여유도 정신도 없었던 듯 합니다.
무서운 정도에 대해서는 10점이 만점이라 치면 1.5점 정도였습니다.
점프 스캐어도 싫어하고 애초에 호러 영화를 즐기지도 않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안 봅니다.
하지만 호러 게임은 종종하니 (도망류 말고 학살류) 그렇다고 무서운 걸 못 보는 것도 아닌 제 기준으로 호러영화라고 부르기엔 약했습니다.
소리로 강조하는 장면들이 좀 있었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이 더 사람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아내가 무서운 걸 많이 꺼려하는 편이라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장면이 나오면 잘 못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보더라구요.
그리고 10원 대신 100원을 써서 충무공을 강조한 것,
쇠말뚝은 측량용이라는 언질을 보여줘서 그 의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
오행에 따르면 말이 안되는 약점 공략이지만 일제에 대한 한민족의 한을 되새긴 것,
디테일이 좋았습니다.
'영화 내내 피해자만 등장한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던 중 아내의 한 마디가 생각의 여지를 던져줬습니다.
고용주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해 고생하는 주인공 일행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매국노는 벌 받아 마땅하지만 자신이 충성한 일제에 의해 쇠말뚝을 가리는 미끼로 쓰여졌고,
매국노의 자손 또한 더러운 돈으로 부를 유지했지만 그 부를 안겨준 선조에게 피해를 입었고,
대살굿을 했다지만 예상외의 사고로 인부 중 한 명은 동티나고,
오니는 앞장서서 전쟁을 이끌었는데 죽어서 대우는 못 받고 침략할 나라 쇠말뚝 신세나 되고,
여기서 제일 억울한 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반달가슴곰은 인간들이 죽이니 살리니 싸우기나 하고,
일제는 패망했다지만 이 모든 것을 이끈 일본 승려는 이미 죽고 없네요.
결국 이겨서 일상을 되찾았지만 +가 아니고 -가 된 느낌이 영화 후반부에서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담으로 포스터는 주인공 얼굴들 둥둥 띄워둔 것보다 파내진 묘 안을 모여서 들여다보는 쪽을 좋아합니다.
가까이서 봤을 땐 몰랐거든요.
멀리서 보니까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