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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신변잡다 이야기

저는 1년차 바텐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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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노동에 지쳐서 육체노동을 해보려고, 내 디자인에 실망하는데 지쳐서, 쉬는 거 보단 일하는게 나은데 그나마 여행을 대신할 일이면 좋겠어서, 늙기 전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서, 내 바를 가지는게 로망이라 경험 삼아.

여러가지 이유로 시작했다가 원래라면 어제 9월 1일이 그만두는 날이 되었을텐데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있던가, 생일 파티를 바에서 일하면서 해버렸네. 여튼 내년 초까지는 바텐더라는 고유명사를 달고 있을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바텐더라는 일을 해보길 정말 잘 했다는 거. 나이가 있다는 걸 핑계삼아 빚내서 가게 구하고 바 주인으로 시작했으면 여러가지로 후회했을 듯,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직접 바텐딩을 해서 알게 된 술 관련 바텐더로서의 지식과 경험은 당연하니까 넘어간다치고.

일단 자리가 너무 좋다, 아무리 좋은 바였어도 번화가 술집들에 끼어 있었다면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전혀 다른 것이었을거다. 이 1년간 아버지 지인을 제외한 태어나서 가장 많은 서울대 관련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관찰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경험이었다. 먹고 마시며 즐길땐 별 다를 거 없는 사람인데도 그들의 대화, 지식, 목표를 엿볼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거지. 아, 그래서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좀 고생해야하는 점은 있지만.

어차피 토킹바처럼 바텐딩은 뒷전이고 여자 위주의 서비스를 하는 곳은 갈 생각도 없었지만 바를 너무 잘 골라왔다. 전통 클래식 바는 아닌데 매니저나 사장의 마인드가 클래식 바를 지향하다보니 기본이 뭔지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장소 뿐 아니라 사람도 잘 만났지, 서울대와 고대 출신 바텐더라니, 한 곳에 목표를 정하면 그쪽에 시간과 노력과 근성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다른 길 마다하고 바텐더를 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할리가 없잖아. 사장님도 잘 만났고. 근데 어째 다 나보다 어려... 내가 제일 늙었네 으어.

사람 상대하는 걸 참 어려워한 나에겐 거의 도전 수준인 일이었는데, 여전히 생판 모르는 누군가를 손님으로 바에서 마주대하면 무슨 얘길해야하나 복잡하지만 최소한 부담감은 많이 사라졌달까. 

직접하라면 후덜덜거리겠지만 가게라는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일하는 사람의 힘든 점이 뭔지 느껴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뭐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다면 거짓말이지. 몸이 힘든 건 정말 어쩔 수 없네, 나이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강력하지만. 특히 일하기 시작한 초반만해도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졌던 발바닥이 이젠 이틀을 연속으로 쉬어야 좀 괜찮아지고 그나마도 하루 일하면 또 아파... 캐셔 같은 거 보면서 하루종일 서 있는 분들이 참 존경스러울 따름.

신혼인데 일주일에 하루, 많아야 이틀이 와이프랑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란 걸 감안하면 정말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페이야 뭐 말 안해도... 워낙 이쪽이 디자이너보다 박봉이니 말 다했지.

그래서 결국

여느 직업들처럼 장점도 단점도 있는 이 일을 하며 1년을 결국 채웠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바텐딩이 재밌다는 거. 일이 재밌는게 어디야 정말. 게다가 여전히 내 가게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아쉬운 건 역시 수련이 부족하도다. 


디자인과 그림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주제에.

....라고 써놓고보니 미국에 있을때 ESL에서 만난 선생님 한분이 강의 때 해준 말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

자신이 이제 막 시작한 분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분야의 직업 명칭 - 요리사, 화가, 상담사 등 - 으로 불리는 걸 부끄러워하는 학생이 많다. 부끄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다, 이미 시작한 것 만으로도 당신들은 당당히 그 분야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업으로 스스로를 칭하며 남들에게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더더욱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발전할 수 있는 더없는 계기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나는 고작 1년간 바텐더를 했을 뿐이고 아직 많이 모자르며 이전에 해왔던 일과 바텐딩 사이에서 여전히 선택의 갈등을 하고 있으며 고생과 고민을 끊지 못하겠지.

그래서 나는 나를 알고 있다. 


나는 바텐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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