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기도 하고 가능한 쓰지 않도록 매우 노력하는 단어가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솔직히'. 솔직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럼 이전에는 솔직하지 않았던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거든요. 물론 그전까지는 거짓말이었고 지금부터가 진실이라는 뜻일리가 없죠.
그냥 말하는 바를 강조하려는 의도인 거 이해하지 못할리가 없습니다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분을 만나게 되면 평소에는 다소 자신을 숨기려는 걸까하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또 하나는 제목에도 써놓은 이번 글의 재료인 '원래'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대로 사용되어지기 보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합리화 시킬때 더 많이 쓰입니다.
예를 들면,
너 말투가 왜 그래? > 원래 내가 그래
이거 다른 방법이 있지 않나? > 원래 그렇게 한다
저번하고 맛이 다르지 않나? > 원래 그 맛이다
등등등.
물론 원래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존재합니다.
역사라던가, 공식이라던가, 혹은 물리법칙이라던가는 진짜 정말로 원래 그런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솔직히와 마찬가지로 원래를 사용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원래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내가 바뀔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을 수 있으니까.
저 역시 굳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바꾸고 싶지 않은 행동이나 어휘적인 지적을 회피할때 종종 사용해왔었습니다. 살면서 누가 한 번 안 그래봤을까요.
여기까지 보자면 사는 거 피곤하게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으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 사고방식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으리 어디로 어떻게 튀어나갈지 모르는 디자이너 시절을 거쳐오면서 굳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텐더를 하고 있는 저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칵테일은 요리의 조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이 되는 조합의 틀은 있지만 정답이 없습니다.
김치 찌개에는 최소한 김치가 들어가야 하듯이, 칵테일도 기본적으로 반드시 들어가야하는 재료가 있지만 그외의 재료의 종류나 비율의 변경이 가능합니다.
다만 메뉴에 변형을 가해서 준비하는 것과 이미 준비된 메뉴에 변형을 가하는 건 분명 다른 일이죠.
식당에서 준비한 메뉴의 정해진 맛을 꾸준히 일관되게 유지하는 건 분명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식당과 달리 바텐더는 고객의 다양한 요청에 응해야할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같은 칵테일도 조금 더 달게, 조금 도수를 약하게, 조금 덜 시게 마시는 걸 선호하신다면- 만들어진 후 고객이 맛에 변화를 주는 게 아닌, 만들때 최대한 맞춰드릴 수 있는 게 어느 요식업에서도 볼 수 없는 바의 매력 중 하나니까요.
물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가장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칵테일, 특히 시그니쳐 Signature 메뉴의 경우는 맛을 타협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음식이 처음 개발됐을때는 모두 누군가의 시그니쳐가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개성있는 맛을 지녔다하더라도 시그니쳐 칵테일도 언젠가는 클래식의 범주에 들게 되겠죠.
우리 바의 이 메뉴의 맛은 '원래' 그런 맛이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대로 드셔야만 합니다-가 아니라, 저희가 고심해서 정한 맛이니 가능하면 이대로 드시길 권해드립니다- 라는 부탁과 함께라면 단지 맛을 위해 서가 아닌 고객을 위해 바 안쪽에 서있어야하는 바텐더로서 더욱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그래도 싫다고 하시면 기본은 지키되 조절해드리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ㅎ 원재료의 맛도 천차만별이거늘 원래 그런 음식의 맛은 없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