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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관련/게임 리뷰

리뷰) P의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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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질문은 여전히 모범답안을 찾아 헤매고 있다.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해석을 바탕으로 수많은 잔뿌리를 퍼트려왔지만 결국 주제를 관통하는 건 '무엇이 인간임을 정의하는가'일 것이다.

P의 거짓 역시 같은 선 위에서 톱니바퀴를 끼워맞추고 있지만 이 작품에 맞춰 다듬자면 -으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문장이 좀 더 적합할 것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불려질 수 있을까

One lie makes many.

비록 피노키오가 애초에 마냥 따뜻하기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를 범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동화다.

그런 이야기조차도 어른의 시선이 바탕에 깔리면 그 이야기 안에 담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의도를 파악하는 대상이 된다.

이 시점부터 피노키오가 반성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피노키오의 정체성을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만든다.

P의 거짓은 여기에 비틀린 감성과 소울라이크를 덧붙여 피노키오 이야기를 재조립했다.

그렇기에 P의 거짓은 잔혹동화가 되어 귀엽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심지어 교훈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거리낄 게 없어진 P의 거짓은 기다렸다는 듯이 황폐하게 꾸며놓은 세상을 마음껏 자랑한다.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할 인형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자연스럽게 도시는 재기능을 잃은 채 시체밭이 되어가고, 인형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뒤틀린 존재도 인간을 위협하고.

그 와중에 시대적 배경은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복식과 건축양식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며 온갖 신화적 괴담이 무성했던 어두웠던 시대상도 반영해준다.

기계공학의 진화가 일어나는 중임을 암시하는 장치도 제대로 들어가 있다.

설정상 비록 인형에 의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다른 부분이 발전하진 못했다고 언급하지만, 당장 인형만 해도 기계공학의 근본인 톱니바퀴 장치로 가동되며 후반으로 가면 아예 수정궁을 보여주기도 하기에.

음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술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시간대를 선보였다.

이쯤되면 빅토리아 시대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고 리게인 시스템이나 특히나 무기 디자인에서 기계공학적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블러드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전반적으로 블러드본보다는 채도가 좀 높다는 게 음습한 분위기를 꺼리는 사람에겐 다행이랄까.

물론 그렇기에 표절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기에 내 주관만으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의견을 피력하고 싶진 않지만 분명한 건,

P의 거짓은 프롬빠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시각적 분위기도 잘 어울리지만 주요 테마인 거짓말 또한 훌륭하게 게임에 녹아들어있다.

피노키오와 게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now loading이 아닌 now lying이 얼마나 유머와 패러디의 선을 훌륭히 유지한 결정체인지 납득이 갈 것이다.

심지어 로딩 애니메이션은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머리니 말 다했다.

게다가 여타 소울라이크 장르에서도 부활에 대한 설정을 다양하고 흥미롭게 표현해왔지만, 원작에 있는 설정을 녹여 넣어 사망 후 부활하는 과정을 세계에 거짓말 함으로서 시간을 되돌린다는 발상은 신선하게 와 닿았다.

좀 더 직관적으로 거짓말을 게임 진행에 관여하는 요소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소울라이크, 특히 다크소울 시리즈에서 인간성은 형태를 지닌 다소 기묘한 크리쳐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P의 거짓에서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점점 획득해나가는 인간성은 말 그대로 인간에 얼마나 가까워지는가를 판별하고, 나아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건 인간인가 아닌가를 고심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원작에서 가지고 온 건 개념뿐만이 아니라 기존 캐릭터들도 적절한 역할이 주어졌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적당히만 묘사하자면,

원작대로 피노키오의 제작자이자 착한 아들을 원하는 제페토,

원작처럼 피노키오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푸른 요정,

원작과 조금 달리 피노키오에게 조언을 해주는 귀뚜라미,

그리고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피노키오의 모험에 등장하는 검은토끼들과 여우와 고양이 등.

물론 P의 거짓만의 창작 캐릭터도 포함되어 있으며 누군가는 아군으로, 누군가는 적으로, 누군가는 교섭 가능한 상대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실 창작 캐릭터들도 어떤 작품에서인가 영향 받은 흔적이 있으므로 그걸 추적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이렇듯 창작 캐릭터들과 특유의 설정이 존재하기에 P의 거짓이 피노키오에서 그대로 들어놔 옮긴 건 아니다.

그 말은 소울라이크 역시 그대로 들어놔 옮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블러드본처럼 회피로 공격을 피할 수 있지만 패링을 함으로서 상대를 기절 상태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나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는 의수는 세키로를 떠올리게 한다.

장비의 구성 요소는 다크소울을 살짝 변화시켰으나 무기 시스템만큼은 새로움을 더해 얹었다.

날과 손잡이를 분리해서 재조립한다는 발상은 합연산이 아닌 곱연산에 해당하니 정말 다양한 형태의 무기 조합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이를 통해 날과 손잡이에 각각 배정되어 있는 페이블 아츠의 조합 또한 여러가지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렇게만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것들을 섞어 기괴한 혼종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P의 거짓의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잘 짜여진 연속된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공방과 타격감이 확실한 전투하는 재미, 캐릭터와 내가 같이 성장하는 재미, 나를 둘러싼 세계와 적들에게 몰입하는 재미,

즉 소울라이크의 정석을 제대로 지킨 상태에서 새로운 것들

- 안전하게 피하고 착실히 데미지를 쌓을 것인가 전부 튕겨내고 큰 데미지를 넣을 것인가

- 어떤 의수를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것인가

- 날과 손잡이를 내 입맛에 맞게 조합할 것인가 분리할 수 없는 고유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 조합한다면 페이블 아츠를 공격형이나 버프형 어느쪽으로 조합할 것인가

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알맞게 배치했다는데 있다.

뭐? 그냥 평범한 소울라이크잖아?

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던 회사가 만들어낸 유사 소울라이크인 P의 거짓이,

특히 프롬 소프트웨어 = 본가의 소울라이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

작정하고 프롬빠들이 프롬의 본질적인 요소를 추구했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다.

 

허나, 대한민국 출신 소울라이크 게임이기에 어떻게든 올려치고 싶은 심정은 막심하지만 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돌파가 어려워야 소울라이크지-라는 인식은 분명 존재하지만 과하게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간이 다수 존재한다.

다행히 레벨 디자인의 이해도가 낮은 제작사가 무작정 적의 수를 늘려 난이도를 올리는 멍청한 짓에 비할 바는 아니다.

주로 적의 공격 패턴이 문제의 소지가 되는데,

아마 굳건한 끈기와 패턴을 파악하려는 의지와 다양한 패턴 파훼의 경험이 있는 능숙한 유저가 아니라면 '나보고 어쩌라고' 소리가 나올만한 공격 패턴이 특정 구간부터 보스와 중형 몹들에게서 발견된다.

끝났나? 싶었는데 공격이 추가되고, 때리나? 싶은데 안 때리는 패턴을 연속적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오죽하면 제작진이 유저를 향해 진심으로 놀리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물론 적의 패턴을 수시간동안 반복 습득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긴하다.

하지만 엇박과 페이크성 모션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소울라이크 게임들 중 가장 파훼하기 어려웠다.

 

또 한가지 단점은 중후반까지 잘 이끌어왔던 배경의 시작적 디테일이 후반에 와서 눈에 띄게 저하된다는 점이다.

마지막 장소에서 마지막 보스를 향해 출발하는 시작점에서의 연출은 좋았지만 마지막 전투를 위해 공략해야하는 건물의 외관적 공간적 디자인이 많이 투박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 너무나 강했다.

분명 상징성이나 무게감을 압도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석재 건물로 정했을텐데, 진행하면 진행할 수록 목재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다크소울로 비유하면 센의 고성에 들어갔는데 뜬금없이 병자의 마을이 섞여서 등장하는 느낌이라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건물 내에 분위기를 위해 설치한 상징이나 문자 등 여러 장식들도 플레이 내내 꾸준히 접해온 디자인도 아니었고 종교적 신화적 통일감도 느껴지지 않아 여러모로 어색함만 가중시켰다.

 

그 외에는 패링을 강요하는 전투 시스템이나 다양한 무기 조합에 비해 적게 주는 강화재료 정도가 있겠지만,

P의 거짓의 완성도는 이것들을 다 무시할만큼 엄청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If Pinocchio says “my nose will grow now”……. If he says it will grow but it doesn’t, he’s lying. But his nose grows when he lies, so he would be telling the truth. But his nose still grew even though he told the truth!

 

내가 진정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코가 길어지는 건지, 나는 옳은 말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어 코가 길어지는 건지, 정답을 알 수는 없다.

분명 피노키오의 역설은 유명한 난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피노키오를 언급한다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면서도 인격을 가진 인형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P의 거짓 역시 내부적으로 게임 레벨링이 적절했는지, 전투 시스템이 적합했는지, 외부적으로 이게 표절인지 오마쥬인지 패러디인지 느끼는 건 분명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고 그렇기에 결코 정답을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P의 거짓은 분명 앞으로도 논란을 등에 업고 가겠지만 이제는 많은 소울라이크 팬에게 알려진 게임이 되었고 소울라이크 장르 역사상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 됐다고 확신한다.

 

부디 또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주시길.


네, 재밌게 빡쳐하며 욕하면서 했습니다.

소울라이크 장르라면 최고의 칭찬일까요.

위에도 써놨지만 패턴을 단시간에 파악을 할 수 없게 짜놓은 게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주범이었습니다.

나름 소울라이크 보스공략 영상도 올리고 패턴도 분석해왔는데 경험상 단시간에 파악하기 가장 어려웠습니다.

초반부터 엇박으로 난감하게 만든 축제인도자부터 우리는 너희를 이렇게 고생시킬거야라는 메세지를 유저 면상에 집어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물론 팬티만 입고 노히트런하는 고인물들에겐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그리고 로봇 3원칙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게 길게 이어지면 스포에 너무 깊게 발을 들일 거 같아서 뺐습니다.

아직 해보지 않은 분들은 제페토의 대사를 눈여겨 보시면 더 재밌을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뽕 요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으례 소울라이크에는 일본적인 배경이나 무기도 섞이기 마련인데 한국적 무기가 나와줘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으례 소울라이크에서 동양인이면 일본인이겠거니 할 수 있지만 대놓고 한국인 캐릭터가 나와줘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여러모로 기존의 관습을 따르면서도 깨부수는 게임이었네요.

 

정말 마지막으로,

알쓸신잡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토론할 때 나왔던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에 창조주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은 여러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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