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비디오 게임은 오락실에서 주로 접했기에 나에게 게임이란 격투게임이나 마찬가지인 시절이 있었다.
남들 스타1에 미쳐있을 때 조차 격겜하러 오락실을 갔던 나였지만, 관심은 점점 mmorpg로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와우하느라 대부분의 다른 게임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던 철권 시리즈조차 철권7 때 결국 흥미를 잃어버렸다.
혹시나 싶어 DLC 캐릭터와 묶어서 판매하는 스파5를 할인하는 김에 구입했었지만, 그조차도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모셔놔버리고 말았다.
MMORPG의 시대가 황혼을 맞이하고 내 취향이 소울라이크에 온전히 머무르게 되었을 때 즈음, 설마 내가 예전에 시간만 나면 와우에 접속하듯 스파6에 접속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엇이 스파6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나
시작하게 된 건 반쯤 도박이었다.
워낙 격투게임을 좋아했었다보니 ‘어쩌면 이번에는 흥미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었달까.
결과적으로는 거의 동시에 나온 디아4를 무시하게 만든 최고 공훈을 세웠다고도 할 수 있다 핳하.
일단 스파6만의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고 새로움을 가미한 방식이 너무나 훌륭했다.
초기 로스터 중 스트리트 파이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스파2의 캐릭터들은 모두 모여있었다.
심지어 스파2 캐릭터 선택창 순서 그대로.
스파2로 격투게임을 시작했던 내 세대의 게이머들에게는 이 얼마나 벅차오르는 존중인가.
거기에 더해 슈스파2의 디제이와 캐미, 스파4의 주리, 스파5의 루크까지 각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들 한 명씩은 포함되어 있었다. (스파제로와 스파3는 4와 5에서 충분히 챙겨줬다고 생각했을지도)
특히 스타팅 엔트리에 주리를 넣어준 건 이제 시리즈의 기본 캐릭터라고 인정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새로 나온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취권과 스트리트 댄스의 중국인, 인술과 90년대 디자인의 미국인, 발레와 유도의 프랑스인, 사이코파워를 쓰는 몸짱 노인 등, 하면 할 수록 역시 캡콤의 캐릭터 디자인의 대단함과 신박함은 조합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겨울 수 있어도 시스템 이야기를 조금 해야하는데, 스파6가 격투게임치고 비교적 대중성을 확보한 큰 이유는 콤보도 넣기 힘들어하는 초심자를 위한 시스템적 배려가 너무나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파6에서 추가된 모던 시스템 때문인데, 단순히 버튼 하나만 눌러도 커멘드 필살기가 그냥 나가고 특정 버튼 조합만으로도 기본기 > 필살기 > 초필살기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아니 그럼 그거 사기 아닙니까 누구나 모던하겠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데미지가 약해지거나 특정 기술을 쓸 수 없게 해서 나름의 밸런스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프로 수준의 고수들 사이에선 모던 모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높은 티어풀에서 모던은 특정 캐릭터만 쓸만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 얘기를 왜 했느냐, 이 시스템 덕분에 초고수까지는 힘들어도 자신보다 어느정도 잘하는 사람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 초심자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덕분에 모든 멀티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유저풀이 어마어마하게 급상승을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수준이 높지 않은데 4달이 넘은 지금도 비슷한 실력의 사람과 너무나 쉽게 매칭 되어지고 있고 분명 나보다 티어가 낮은 모던 유저에게 패배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잘하는 건 분명히 다른 문제일터.
고인물 고수들만 바글바글해서 매번 패배하면 무슨 재미로 대전게임을 하겠나.
지금은 스파6 키면 온라인 대전부터 하지만 막 출시했을 당시에는 싱글 컨텐츠 뚫느라 정신이 없었다.
워낙 엄청난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가진 게임들이 많아서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나름 자유로운 커마 덕분에 내 캐릭터 만드는 맛도 괜찮고, 기존 캐릭터를 스승으로 모시고 기술을 하나씩 배워나가며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이름 그대로 거리에서 싸우는 컨셉도 충실했다.
격투게임의 싱글 모드라고 하면 으례 스토리 모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스파6에서는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에서 게임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건 분명 역대급 격투게임 싱글 컨첸츠였다고 생각한다.
자잘하게 뭔가 많았던 길티기어도 좀 초라해지고 내년에 나올 철권8도 긴장 좀 많이 해야할 듯.
그럼에도 당연히 완벽한 게임은 있을 수 없다
일단 밸런스를 논할 실력이 절대 아니므로 그쪽 언급은 하지 않겠다.
4달의 시간을 다르게 말하면 여전히 유저가 많지만 슬슬 빠질 사람은 빠져나가고 고착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초반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확 체감되는 게, 눈에 보이는 티어를 믿을 수가 없다.
2달 정도까지만 해도 이제 막 시작한 고수가 아닌 이상 랭크 게임을 돌리면 대부분 티어에 맞는 실력을 보여줬는데 최근에는 어? 이 실력에 이 티어일리가 라고 확 와닿는 사람이 꽤 늘어났다.
랭킹과 관련없는 배틀 허브나 캐쥬얼 매치에서는 티어 대비 고수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패작을 해서 저티어를 받은건지 초보자를 상대로 농락하려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장르 떠나서 대인전이 있는 게임은 어쩔 수 없구나 싶다.
그리고 시스템 특성상 벽에 몰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녹아버리는 경우가 잦다.
초심자도 쉽게 콤보를 넣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중앙에서 눈치 싸움할 때의 얘기다.
결국 판을 지배하는 건 경험이기 때문에 벽에서의 공방에서 실수 몇 번하면 바로 패배로 직결되니 초심자에게도 전반적인 스파6의 이해가 요구된다.
싱글 컨텐츠 칭찬을 왕창해놨지만 당연히 단점도 존재한다.
레벨이 쭉쭉 오를 때는 할 맛이 나는데 어느정도 상승세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슬슬 지루해진다.
퀘스트는 이것저것 나오지만 결국 하던 것의 반복이고 전 캐릭터를 스승으로 삼아도 익숙한 기술만 계속해서 쓰게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 했으니 시간을 좀 투자하면 엔딩까지 보는 건 그렇게 못할 것도 아니지 싶다만.
스승과의 우호도를 끝까지 채우면 2P 스킨을 획득할 수 있는데 요구하는 수치가 상당한 편이다.
아, 물론 이걸 신 캐릭터 나올 때마다 꾸준히 하는 게 귀찮으면 돈으로 사면 되긴 한다.
게다가 싱글 컨텐츠는 반드시 해야하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접으면 그만이긴 하다.
물론 나는 엔딩 다 보고 요즘도 가끔 들어가서 짬짬히 레벨 올리고는 있다만.
유난히 격투게임들에서 보여지는 단점인 거 같은데 예쁜 옷이 별로 없고 종류도 다양하질 못하다.
현재 1시즌 추가 캐릭터가 둘 나오는 동안 콜라보라고 해봤자 닌자거북이가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고 최근에는 딱히 특색있는 의상이나 악세서리가 보이질 않는다.
파이팅 패스를 매번 꽉 채웠지만 여전히 캐릭터 스킨도, 아바타 의상도 가짓수가 너무나 적은 게 아쉽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스파6는 격투게임입니다.
현존하는 게임 장르 중 가장 인기없는 장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실력을 겨루는 게 핵심인데 그마저도 1:1이라 어떤 게임들처럼 남 탓도 못 하고 오토 사냥 따위도 없죠.
이런 암울한 현실을 등에 엎고도 발매 직후 '나름의' 어마어마한 인기몰이를 했다는 건 과거의 계승과 미래의 개척이 동시에 이루어진 혁신이 스파6에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이름이 격투 게임이라는 장르의 기준을 세우고 꾸준히 쌓아 올린 증명 그 자체인 건 누구도 반론하지 못하겠지만 단순히 그 이름값만으로는 불가능 했을 테니까요.
2024년에 철권8이 발매하면 아마도 상당수의 유저는 철권으로 빠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가 뭐래도 철권이기도 하고 슬프지만 격투게임 유저풀이란 게 워낙 적은 편이니 돌고 돌기 때문에.
나 역시 철권에 학생 시절을 온전히 바친 과거가 있으니 무시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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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플스는 스파켜놓고 스팀은 철권 켜놓을까...?
여튼 그건 그 때 생각할 일이니 지금은 스파6를 느긋하게 즐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