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반적인 진행상 스포가 있습니다 //
24년 7월 6일.
DLC 발매가 6월 21일이었으니 딱 15일 만에 마지막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너무나 기다리던 엘든링의 DLC였지만 넘치는 기대를 안고 처음 그림자의 땅을 밟았던 순간과는 다르게 마지막은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네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당히 올라간 보스전의 난도 때문이었고 마지막은 이렇게 어려워도 괜찮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느낀점들을 소소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여전히 아름답고 치열하며 잔인한 세계
DLC인 황금나무의 그림자 뿐만이 아닙니다.
그 전에는 차가운 골짜기의 이루실과 아노르 론도그 그러했고,
엘든링 본편에서도 표류 묘지를 빠져 나오며 림 그레이브 너머에 보였던 거대한 황금 나무가 주던 벅참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아채죠 - 아, 저기에 가야 하는구나.
시선을 사로 잡는 풍경은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냥 보기에 아름다운 장소는 이외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소울라이크를 아는 사람들은 저 안에 산재한 수많은 난관과 저항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푸른 해안은 파랗게 빛나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지만 묘비와 석관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무녀의 마을은 적도 없고 평화롭지만 너무나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이 외에 다양한 장소에서도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세계관과 묘사 방식에 빠지게 되면 프롬 소프트웨어가 제작하는 게임을 끊지 못하게 되는 듯 합니다.
공간으로서의 그림자의 땅
그토록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지만,
상호작용하는 오브젝트가 배치된 탐색 가능한 필드로만 접근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횡면적 뿐 아니라 복잡하게 꼬인 종면적을 포함하면 본편에 비해 체감상 40~50% 정도의 절대 좁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넓이에 비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숫자가 본편에 비하면 너무나 적습니다.
길을 가다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아이템은 물론이고 가려져서 뭔가 숨겨놨을 법한 장소에 아이템이 있는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의미 있는 장비야 그럴 수 있지만 소비형 아이템도 적게 배치한 건 비어있는 느낌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 와중에 선공을 하지 않는 사슴, 다람쥐, 양 등의 야생동물의 배치는 본편보다 밀도가 높구요.
그러다보니 세계가 전반적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심하게 비어있다고 느껴집니다.
어차피 DLC입장 조건이 모그 처치인데 그쯤되면 단석 5~6정도는 상점에서 구입 가능할 시기거든요.
그러니 그 정도의 단석이라도 여기저기 좀 배치해뒀으면 좋았을텐데 싶네요.
본편을 뛰어 넘는 어려움에 대하여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는 DLC의 어려움은 보스전 난이도입니다.
대부분 유저의 초반 선택은 사자무 또는 렐라나입니다.
그 이외의 지역은 대놓고 의도적으로 가는 길을 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자무나 렐라나를 공략해야 하는데 둘 다 절대로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본편의 난이도를 기준으로 봐도 아주 어려운 보스입니다.
제 경우 일부러 영체를 사용하지 않았고 날먹 빌드를 쓰지 않았기에 고생을 자처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란 건 사람마다 주관적인 관점이라 이 둘을 가볍게 제압한 망자들도 많겠습니다만.
사자무는 시도 때도 없이 빙글빙글 돌며 카메라를 돌리는데 벽에 몰리면 답이 없고,
판정도 넓고 회전 공격이 많은데 연타 횟수까지 많아 피하느라 급급하고
속성을 세가지나 돌려 써서 저항을 극대화하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대놓고 때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어서 공략 시간이 오래 걸려서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렐라나는 쌍검을 써서 미묘하게 겹쳐서 들어오는 공격을 한 번에 피해야 하고,
사자무와 마찬가지로 돌면서 연속 공격을 하는데 언제 끝나는지 너무나 헷갈리고,
얘도 당연하다는 듯이 속성을 두가지 쓰는데 쌍월에 한 번 맞으면 끝날 때까지 손을 놔야합니다.
그리고 둘 다 2페이즈를 체력 50%가 아니라 70%가 되면 발동합니다.
고작 20%지만 2페이즈가 되면 어떤 보스던 공격이 더 매서워지고 체력을 깎을 기회가 적어지니 체감상 고난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둘 다 공격력이 한 방 한 방이 너무 아파서 물약도 다 못 쓰고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약 저격 패턴은 말할 것도 없구요.
대표적으로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초반 지역의 얼굴이 이 정도니 다른 보스전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결국 익숙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보스전은 결국 패턴입니다.
1레벨로 모든 보스런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 패턴을 전부 외웠기 때문에 가능하니까요.
저도 결국 패턴을 외워서 영체없이 모든 보스를 잡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왕 라단만큼은 소위 망자급이 아닌 일반적인 익숙해짐으로 넘기에 너무나 높은 벽입니다.
그나마 이전까지의 보스들은 어려웠지만 2페이즈 넘어가도 이유를 알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라단은 2페이즈 진입하고 이유도 모른 채 수도 없이 죽어야 합니다.
이유를 좀 알만해지면 1페이즈는 의미없이 계속 반복하는 기분이 들어 짜증이 납니다.
그렇다고 1페이즈에서 안 죽냐면 그것도 아니고 2페이즈로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라단은, 그냥 어려운 걸 떠나서 참...
여러가지 의미로 더럽게 어려웠습니다.
저보고 약속의 왕 라단을 다시 잡으라면 대방패에 날먹 무기 들고 슬라임 영체 끼고 싸울겁니다.
지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손쉽게 DLC의 지도와 본편의 지도를 비교할 수 있기에 언뜻 보면 림 그레이브 정도의 넓이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건물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의 지형 역시 Z축으로도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빠르게 다회차를 도는 분이 아닌 이상 가는 곳마다 첫 방문이니 헷갈리기도 하고 꼼꼼히 살펴보게도 되어 체감되는 체류 시간은 훨씬 길어집니다.
무엇보다도 본편에서의 의도적으로 숨겨진 길은 특정한 아이템이나 던전 같은 장소였는데,
DLC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이 의도적으로 찾기 힘들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사자무와 렐라나 > 메스메르 > 로미나 > 라단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보스런 루트는 찾기 쉽게 이어져 있구요.
세세한 건 무시하고 빠르게 회차를 도는 분들에게는 최적의 길 배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시간을 부어야 진행이 되는 유저나 모든 보스를 잡고 싶은 유저에게는 힘든 구성입니다.
일반몹들도 중간이 없는 편입니다.
120대 초반에 DLC로 건너왔습니다만 가장 약한 몹들은 한 번 때리면 죽는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조금이라도 강한 몹들, 뿔전사 유형이나 불의 기사와 주검사 같은 적들은 본편의 엘리트 몹 이상의 강함을 지닙니다.
흑기사들도 있지만 아예 미니 보스로 나오는 몹입니다.
그나마 주검사와 불의 기사는 뒤잡이라도 가능합니다.
뿔전사류의 적들은 뒤잡도 안되고 점프 강공에도 강인도가 깎여나가질 않아서 체력이 적은 보스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사도 그런 류의 적들을 필요 이상으로 배치하진 않았지만 분명 본편의 엘리트몹에 비하면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이 중복되면서 연쇄적으로 종합적인 어려움을 증폭시킵니다.
비록 그림자 나무 파편을 통해 숨을 살짝 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긴 했습니다만,
제작진은 근복적인 어려움을 양보할 생각이 티끌조차 없습니다.
블러드본, 다크소울, 세키로와 달리 엘든링은 글로벌 빅히트를 치면서 소울라이크에 관심이 없거나 적어서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까지 엄청나게 끌어들였는데도 말이죠.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확실히 DLC는 본편보다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겁니다.
발매 직후 그림자 나무 파편의 상승 캡을 초반에 높아지도록 조정하긴 했어도 난이도 자체를 수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본편에서 편하게 지냈던 당신들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매운 맛을 느끼도록 해주겠다-
...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악의적이겠지만.
우리는 당신들에게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얄팍한 장애물을 절대로 제공하지 않겠다.
...라고 보는 게 제작진의 의도와 그럭저럭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프롬 소프트웨어에게 있어 어려움이란 그들이 유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겁니다.
그렇기에 얄팍한 어려움이 아닌,
정말로 잘 짜여진 어려움을 만들어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겠죠.
뭐 그럼에도 저는 라단 보스전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요.
다양한 변화와 개선
새로운 무기군이 추가됐죠,
새로운 지역과 보스 포함 캐릭터들이 추가됐죠,
덕분에 본편에서 알 수 없었던 뒷 이야기들이 추가됐죠.
이런 것들만 잡고 늘어져도 파고 들어가면 이야기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한 포스팅에 전부 담는 건 무리구요, 이미 글을 꽤 길게 쓰기도 했고.
그래서 뭐냐 엘든링 DLC는 망겜이냐?
라고 묻는다면 황금나무의 그림자는 상당히 잘 만든 확장팩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려움에 대한 토로를 하고 라단에 대한 불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의 땅은 너무나 매력적인 세상입니다.
애석하게도 본편 정도의 난이도를 기대하고 넘어 온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겠지만,
극단적으로 게임의 밸런스가 망가지거나 구성이 엉망이 되지 않는 한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유저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성장하던 날먹 빌드를 쓰던 조력자의 도움을 받던 어떻게든 넘기만 하면 되는 어려움이죠.
그 과정에서 빛 바랜자가 또 하나의 망자로 거듭나게 될 뿐...
이라고 한다면 저도 너무 고여버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