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약간 있는 리뷰입니다 //
와, 2025년에 퇴마록을 극장에서? 그것도 애니메이션으로?
저는 퇴마록이 출간됐던 당시 소설책으로 접한 세대입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인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아마 비슷한 생각이었을 거에요.
이미 홍보로 많이 알려졌겠지만 퇴마록이라는 소설책은 약 30년 전 시작되어 1천만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 전설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1998년...
퇴마록이 영화로 출시하게 되는데,
기대했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습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 퇴마록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개쳐망해버리는 기염을 토해버립니다.
이랬던 과거가 있으니 어느 감독에게 맡겨도 어느 배우를 섭외해도 결과물이 걱정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는 확인했습니다.
실사 영화를 포기하고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작품화 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CGV Screen X, 전 좌석 리클라이너
프리미어 상영회는 CGV의 Screen X에서 했습니다.
탑건2를 리클라이너 좌석이 있는 메가박스 더 부티끄에서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자도 편했고 방 안에서 아내와 둘만 있으니까 집에서 영화 보는 것처럼 쾌적했어요.
그런데 말만 들었지 전 좌석이 리클라이너인 영화관은 처음 경험했습니다.
발 받침을 완전히 올려도 지나갈 공간이 있을 정도로 앞 좌석과 간격이 넓습니다.
편하게 눕듯이 앉아도 앞 좌석 관람객의 머리가 보일락말락 해서 스크린을 보는데 전혀 불편함도 없었구요.
단점이라면...
저처럼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가죽 시트 때문에 엉덩이에 땀이 밸 수 있다는 거...?
언어 : 한글!!!
아... 한국에서 만든 국내 애니메이션의 특권입니다 진짜.
자막은 나오긴 했습니다만 청각장애분들을 위한 것이었겠죠.
외국어 더빙? 그게 뭐임?? 먹는 거임???
그리고 전문 성우분들의 열연, 이보다 더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 있을까요.
성우분들 모두 연기 정말 훌륭하셨습니다.
퇴마록의 영상
언급했듯이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건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아무리 CG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마법이나 능력을 사용하는 장르의 영화들을 떠올려봤을 때,
마블 영화급의 기술력이 들어가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영상미를 뽑기가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면 가상의 이미지와 맞는 가상의 이미지를 엮으면 될 일입니다.
능력들이 부딪힐 때 발생하기 마련인 화려한 3D 효과들이 굳이 현실의 영상과 어우러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화풍에서 많은 분들이 아케인을 떠올릴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여 '따라했다'라는 평이 뒤따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저도 누가 먼저였는지 알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화풍, 즉 스타일이라는 건 결국 장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저렴하게 만드는 3D 애니처럼 어색한 카툰 렌더링을 쓰느니 아케인 스타일을 잘 흡수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심지어 어색하게 따라한 것도 아니고 특유의 붓으로 그린 듯한 텍스쳐 덕분에 분위기의 전달력도 정말 좋았습니다.
다소 아쉬웠던 점도 물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만의 특권이라함은 역시 인간이 카메라를 들고는 따라올 수 없는 가상의 카메라 워크였다고 봐야겠죠.
물론 요즘 영화들, 특히 히어로 무비류에 들어가는 기술은 예전과 매우 달라서 온갖 화려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퇴마록이 영상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바로 그 '화려한 애니스러운' 연출이 다소 적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첫 작품이기도 하고 정황을 알려주는 스토리의 흐름이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당연히 대화가 오고 가는 장면에서 전방위로 돌고 도는 과한 카메라 워크를 쓸 수는 없습니다.
특정 분위기를 강조하는 장면에서는 화면이 여기저기로 휙휙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상황을 알고 감안을 했음에도 카메라 워크는 많이 보던 움직임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어느 영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무난함이었달까요.
극후반으로 가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마지막 대결전에서 다이나믹한 연출이 나오긴 합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조금 더 화려하고 역동적이었어도 좋았을텐데... 싶네요.
이게 다 아케인이 눈을 너무 높여놔서 그래요 어휴.
퇴마록의 음향
시작부터 듣자마자 파묘가 생각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악기들이 모인 소리.
소리만으로도 확 몰입하게 만드는 감각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는 소리들도 적절하게 느껴졌고 마지막 결전에서도 웅장함과 치열함이 잘 느껴졌습니다.
다만 스토리가 전개되는 중엔 딱히 이렇다할만한 음악이나 소리가 기억 나질 않습니다.
물론 퇴마록은 오컬트를 지향하는 작품이다보니 튀는 음악에 귀를 뺏기면 상황에 몰입하기가 힘들 수 있다고 생각은 되네요.
그래도 뭔가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상징하는 소음인 듯 운율인 듯 알 수 없는 소리처럼 어떤 시그니쳐 사운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이건 글쎄요,
제가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왜 주인공격 캐릭터들은 각자 캐릭터 테마 음악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박신부, 현암, 승희, 준후를 상징하는 어떤 소리가 있었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이게 없어서 작품에 집중이 어려웠다거나 별로였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순전히 개인 취향일 뿐이구요.
퇴마록의 이야기
가장 어쩔 수 없지만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퇴마록을 상징하는 네 명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구간이 아닌 오히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예 모를 때부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렇다보니 퇴마록을 이미 오래전에 접해 온 저로서는 얘네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는데,
그걸 영상에서 볼 수 없으니 많이 아쉬웠습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두 번 보고 세 번 봐서 강제로 다음편 제작하게 만드는 수 밖에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각 캐릭터들의 사정을 빼면 반전이랄 것도 없고 저 놈이 착한 놈 저 놈이 나쁜 놈 뻔히 보입니다.
스토리도 퇴마록을 몰라도 다 예상 가능한 과정과 결말이구요.
퇴마록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은 추리하고 궁리하는 재미가 심히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퇴마록의 주요 인물들
가장 스포일러가 강한 주제니 간단하게 감상만 적겠습니다.
박신부(박윤규)
거구로 표현된 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큰 덩치에 반해 정신적인 아픔을 끝없이 감내하는 그의 처지를 상반된 상징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수염도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인상을 부드럽게 해주는 좋은 요소였네요,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처럼.
저는 유난히 박신부가 전투에 임하면서 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울컥울컥 했습니다.
그 양반이 왜 싸우는지를 알고 있으니,
그게 기도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를 언어로 직접 드러낸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현승희
외모도 등장 장면도 인상이 매우 강했습니다.
아무래도 퇴마록 소설 당시의 90년대가 아닌 2020년 이후가 배경이니 디자인에 반영이 됐겠죠.
음... 뭔가 크게 있는 건 아닌데 어차피 보시면 아실 거라 짧게 줄이겠습니다.
이현암
개인적으로는 현암을 퇴마록의 주인공이라고 느꼈었습니다만,
어쨌든 이번에는 활약이 살짝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좀 그... 좀 다른 것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월향이라던가... 예를 들면 월향이라거나...
시간대가 시간대니 어쩔 수 없죠.
원작에서는 좀 퉁명스럽고 까칠한 이미지였는데 너무나 예의가 깍듯해서 좀 어색하더군요 하핳.
장준후
제가 생각한 준후는 진짜 평범한 어린이의 이미지였습니다.
근데 예고편에서도 나왔듯이 생각보다 많이 미형의 외모로 재탄생했군요.
현암과 마찬가지로 시간대 때문에 아직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준후가 할 줄 아는 건 진짜 많은데 프롤로그라 어쩔 수 없었던 게 아쉬웠네요.
조연들도 매력적으로 디자인이 참 잘 됐는데...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줄이겠습니다.
퇴마록의 장르
퇴마록을 바라보는 시선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항입니다.
퇴마록의 근본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오컬트입니다.
으례 떠올리기 쉬운 오컬트 작품들은 보통 분위기는 어둡고 음산하며 상시 조용한 장면이 많아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사건이 일어날 땐 영적인 힘에 의한 현상이 주도적입니다.
그런데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면 특정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좀 밝은 편입니다.
거기에 더해 판타지 액션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강하게 드실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신화가 섞인 시점에서 판타지의 성질이 강합니다.
거기에 더해 무협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동양적인 전투 장면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건 오컬트 애니메이션인가?
아니면 판타지 애니메이션인가?
그것도 아니면 액션 애니메이션인가?
좋게 말하면 온갖 장르의 혼합체인데, 나쁘게 말하면 온갖 게 섞여 있는 셈이죠.
퇴마록을 모르시는 분들이 보시게 되면 기대하고 있던 방향에 따라 만족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분명히 각 장르들이 맛있게 섞여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퇴마록을 아신다면야 감격에 겨워 감동하시면 되구요.
그럼에도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점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12세 관람가.
아...
18세가 욕심이면 하다 못해 15세라도 됐으면 좋았을텐데.
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아쉬웡.
밀어 붙인 부분도 있고 타협해서 각색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항상 하는 말이, 이 작품은 분명 퇴마록이 맞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님의 인터뷰를 봤었습니다.
길게 하신 말씀을 임의로 줄여 옮기긴 했지만 핵심은 저것이었습니다.
'나 원작자 이우혁이 인증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퇴마록이다'
영화관을 가기 위해 이것보다 더한 확신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내와 영화관에 가서 퇴마록을 봤고 둘 다 너무나 만족했습니다.
아내가 나오면서 그러더군요.
이제 영화 퇴마록을 덮어 씌워서 내 기억에서 지울 수 있다고.
분명 부족한 부분은 보이긴 했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아케인이 제가 영상물을 보는 눈을 너무 높여 놓은 탓이겠죠.
그럼에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살아있을 때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느꼈을 정도의 감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발 국내, 세계, 혼세, 말세편까지 쭈욱 나오면 좋겠습니다.
퇴마록은 봤는데 월향을 못 봤다고 월향을...
월향은 봐야하지 않겠냐고 어? 안 그러냐고 제작자님들.